한우는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동반자로 인식되어 가축이 아니라 ‘신’으로서 숭배했고 ‘식구’로서 사랑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육식문화와 다양한 의식문화 속에 등장한 한우를 되짚어보고 전통이자 문화이며, 정신인 ‘우리 소’ 한우와 한우문화를 살펴본다.
문화란 사전적 의미로 인간 특유의 생활양식이자 우리 삶과 사회가 공유하는 마음의 표현을 뜻한다. 따라서 ‘한우문화’란 한우와 더불어 살아가며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한우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가치 를 담아내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 가치의 관점에서 한우문화는 한우의 영향으로 독특 하게 형성된 한민족의 총체적 생활양식을, 정신적 가치의 관점에서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자 연관, 문화 인식, 정서 등을 포괄하는 정신체계를 지 칭한다. 즉, 한우문화를 파악한다는 것은 한우라는 물질적 자원이 우리 민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서 독특한 생활양식을 형성하게 됐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한우는 고급 단백질 공급원으 로서 국민의 건강을 지켜왔다. 한우고기는 머리부터 꼬리, 근육, 내장 등 모든 부위를 요리 재료로 활용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문명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 쳤다. 오늘날 한우는 유구한 한반도 역사 속에서 과 거의 물질적인 가치를 넘어 정신적, 문화적인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있다.
구석기 시대 이래 한반도를 기반으로 한 한민족의 선 주민들이 동물성 식재료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
부여의 제천행사인 ‘영고’는 북방민족들 사이에서 공 통으로 나타나는 샤머니즘에 근간한 수렵축제다. 제 천행사를 할 때는 우선 사냥물을 바치는 의식을 진행 한 뒤 제가회의를 열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다. 이때 제물로 바쳐진 소는 축제의 동물성 식재료가 되 어 신과 인간이 함께 공유하는 육식문화를 형성했다. 후에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과 같은 제천 행사도 부여의 영고를 계승했다.
고구려에서 소는 축력과 고기를 제공하는 고마운 가 축이자,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로서 신성하게 여겼다. 법은 수렵이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대 형 동물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사슴, 꿩 등 몸집 이 작고 날쌘 동물의 사냥 성공 확률이 낮아지자 식 량의 비축 차원에서 야생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한반도 일대에서 주로 사육했던 가축 중 소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사육하기 시작했다. 고조선과 부여 시대에는 농경의 발달로 곡물 섭취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육식이 식생활의 중심이 었다. 특히 부여는 최고 관직명을 가축 이름으로 하 거나 소를 바치면 중죄도 사면해 줄 정도로 정치, 경 제에서 목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소를 전용으로 관리하는 독립 공간으로 외양간이 있 었다는 건축학적 자료, 소가 코뚜레를 하고 있거나 여물을 먹는 모습 등의 그림을 통해서 고구려인들이 체계적으로 소를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 소는 함부로 도축하는 것을 금지했기에 주로 제천행 사 때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고구려를 대표하는 통구이 음식의 한 형태인 ‘맥적’ 은 이름은 다르지만 수렵과 샤머니즘적 전통을 공유 하는 북방민족들에게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제사 음식이다. 초기에는 제천행사에서 신과 공유하는 음 식이었다가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연 회에서 먹게 되면서 잔치 음식이 됐다. 맥적은 후대 로 가면서는 조리의 번거로움 때문에 통째로 조리되 지는 않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소고기를 썰어서 조미한 후에 꼬치를 꿰어 숯불에 굽는 ‘설하적’이 되 기도 했고, 석쇠 등장 이후에는 석쇠구이 형태로 변 모했다가 1960년대 이후 불고기의 형태가 됐다.
백제는 육식과 곡식이 고르게 분포한 음식문화를 가 지고 있었다. 백제에서 동물성 식재료를 얻는 방법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수렵과 가축의 사육을 통해서 였다. 특히 사슴을 신성시했던 백제의 왕들은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고구려와 달리 사냥에서 획득한 사슴을 희생제물로 사용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도 포와 젓갈 같은 독특한 육류 가공 기술을 가지고 있 었다. 신라의 육류 가공 기술은 발달한 목축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라 귀족들은 여러 섬에 가축을 방목하고 필요할 때 사냥했다. 국가에서는 원곡양전 등의 기관을 설치하고 가축을 관리했다. 제사는 서민 들이 육식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때에는 소나 돼지 를 희생제물로 바치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이를 음식 으로 만들어 먹었다.